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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건축 답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 역사와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다

겜축가 2020. 12. 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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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2017년 11월 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코로나가 확산되기 이전임을 미리 밝힙니다.

건축물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정해졌을 때 이를 이루기 위해서 이슈를 선정하고 이 이슈는 사실에 근거해서 만들어지게 된다. 이 과정은 역방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꼭 방향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전 보고서에서는 답사를 통해 건축물에서의 이슈만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면 이번 글에서는 당 이슈를 선정한 목적과 이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해결책을 선정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환경 분야에서 문화에 해당하고, 더 구체적으로는 역사와 전통으로 꼽을 수 있다. 이는 당 미술관이 경복궁의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러 부분에서 해당 이슈를 선정한 것이 적합하며 성공적인 설계로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두 개의 관으로 나뉘어 있다. 근대적인 건물이 미술관에서 전시관으로, 현대적인 건물은 교육동으로 사용되고 있다. 근대적인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로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국군 기무사령부를 거쳐 지금의 용도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역사성이 드러난다.

(좌측)교육관의 모습. 현대적인 느낌이다. // (우측)전시관의 모습. 근대 건축물의 느낌이다. 과거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

 

내부로 들어가기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특징 중 하나는 넓은 마당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시관은 부지를 전시 목적으로 실속 있게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마당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전이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마당은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어떤 미술관에서도 주지 못한 마당의 느낌이 있었는데 특히 이는 조선 양반가로 대표되는 한옥과 바로 옆에 위치한 궁궐 건축에서와 유사한 건축적 표현이 느껴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대지 조건을 고려하면 경복궁의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높게 지을 수 없다. 그렇지만 공공시설, 특히 국립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넓은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특성은 해당 부지에 미술관의 용도에 적합한 대지 조건이었으며 특히 미술관은 문화공간이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문화시설 중 하나인 경복궁의 바로 옆에 있다는 점도 미술관이 들어오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다. 여기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수평적인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조선 양반가에서는 행랑채의 모습이요, 궁궐 건축에서는 돌담의 느낌이 물씬 피어난다. 중앙 마당은 각 관을 완만하게 이어주는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자 전통건축에서 표현되는 비움의 미학이다.

(좌측)중앙 마당. 교육동(좌측), 종친부(중앙), 전시관(우측)의 모습. // (우측)배치도. 얼핏 보면 서원의 모습 같기도 하다. ​

 

이 비움의 미학은 단순히 각 관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뒤쪽에 위치한 종친부가 진정한 주인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조해 주는 역할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마당이, 가장 뒤쪽에 있어서 작게 보이는 건물을 강조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모순적이지만 이것이야말로 한국 전통건축에서 많이 드러났던 건축적 요소이다. 서원의 경우 대부분 전학후묘로 구성되는데 이는 배움터가 앞에 있고 선생을 모시는 위패가 뒤에 있다는 의미로 사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뒤에 있는 사당인 것이다. 거기에 건축물들이 난잡하지 않고 단순한 선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뒤쪽의 종친부에 시선이 가게 된다.

(좌측)종친부로 가는 길. 돌담에 약간 가려져 더욱 흥미를 유발한다. // (우측)종친부 앞 마당. 퐁피두 센터처럼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마당에서 경쾌하게 보였던 종친부는 교육관의 큰 창 모양의 진입로를 통해서 가게 되는데 가는 길은 위로 약간 경사져 있으며 우측에 돌담이 있어 종친부의 모습이 마당에서 봤던 것보다 덜 보이게 된다. 가까이 갈수록 더 안 보이게 되는 것 또한 모순적이지만 상당한 흥미를 끄는 요소이다. 종친부 앞의 마당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이 비워져 있고 사람들이 소풍을 즐기거나 단순 산책 혹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종친부를 놓고 봤을 때는 앞마당이지만,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뒷마당인 것이다.

이미 배치 형식만으로도 충분히 한국건축의 느낌을 잘 표현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상세 부분에서도 한국건축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차경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차경은 크게 네 부분이 있다. 이 중 세 부분은 교육관에서 종친부로 가는 순로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지만 모습은 각기 상이한 면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전시관 내부에서 볼 수 있다. 차경은 쉽게 얘기하면 액자를 건축물로 표현하는 것으로, 경치를 빌려온다는 의미이다. 일본식 정원처럼 인공적인 자연을 건축물 안에 심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경치를 대지 내의 건축물의 틀로 보겠다는 우리 선현의 얼이 담긴 건축적 장치인 것이다.

(좌측)교육관에서 경복궁을 바라보는 모습. // (우측)전시관 내부에서 종친부로의 차경. 약간 작위적이다.

 

경복궁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가장 많이 찾는 대한민국의 명소 중 하나이다. 그들이 경복궁을 찾는 이유는 가장 오래 사용했던 정궁을 방문하는 목적도 있겠지만 가장 한국적인 건축을 느끼기 위해 방문하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배치에서부터 외부에서 느낄 수 있는 마당들의 의미, 차경을 통한 새로운 시선 제공, 전시관 내부에서의 섬세한 요소들로 역사와 전통을 담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좌측)이 유리 패널은 마치 기와의 모습같이 생겼다. // (우측)돌담 상세. 정말 돌을 쌓아 놓은 듯한 모습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역사와 전통이었다.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크게 세 가지 요소를 사용하였는데 첫째는 배치, 둘째는 차경, 셋째는 재료이다. 이 요소들은 점층적인 요소이기도 한데 켜를 통해 들어가는 것이 한국의 전통건축의 특징인 것을 고려해 봤을 때 이런 부분 또한 전통건축을 표현하려 노력한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대지의 위치를 고려해 선정된 이슈는 상기 열거한 좋은 해결책들로 통해 잘 구현되었고, 가장 한국적인 건축물의 바로 옆에 위치한 가장 한국적인 미술관이 되는 데 성공했으며 이로 인해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겨 주어 또 찾아오고 싶게 만드는 성공적인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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