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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건축 답사

국립중앙박물관 : 선택의 기회, 순환동선으로 이루어진 공간

겜축가 2020. 12. 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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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2017년 9월 2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코로나가 확산되기 이전임을 미리 밝힙니다.

 

 

건축물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가치는 이슈가 된다. 이슈는 건축물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에 영향을 미친다. 건축가는 전문가로서 건축물에서 어떤 가치에 중점을 둘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며, 이는 이슈가 성공적으로 표현되었는지의 여부로 알 수 있다. 단순히 전문가라고 하여 비전문가가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문가까지도 어떤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졌는지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건축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이슈 체크리스트에 의하면 많은 이슈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으나 이 글에서는 조사 대상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주요하게 드러나는 이슈는 Circulation에서 Pedestrians의 요소가 있고 Flexibility에서 Choice/variety의 요소가 있다. 이는 보행자의 순환과 다양한 선택을 통한 유연성을 의미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장으로서 관람객에게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며 순환적인 동선을 만드는 것을 주 가치로 삼았다.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선택의 기회가 1순위, 순환동선이 2순위이다.

 

(좌측)이촌역에서 바라본 모습. 우측에는 한글박물관으로 가는 길도 있다. // (우측)좌측에는 대숲길이, 우측에는 대계단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택의 기회가 나타나는 부분은 건축물로 들어가기도 전에 드러난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경로인 지하철 4호선 이촌역을 이용해서 나오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는 길, 국립한글박물관으로 가는 길, 좌우측에 산재된 공원을 이용하는 길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실제 사람들은 국립중앙박물관뿐만 아니라 공원 또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정면을 통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는 길에는 소소하지만 또다른 선택지가 주어진다. 우측에 있는 대계단을 이용할 것인지, 좌측의 좁은 대숲길을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두 길의 분위기는 약간 다르지만 방문 당시에는 대계단에 아이들이 많았고 대숲길에는 부모를 동반한 아이들이 많았다. 이는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안개분수가 대계단 우측 끝에 있어 아이들의 흥미를 끈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또 선택지가 나타난다. 기획관을 갈 것인지, 상설관을 갈 것인지이다. 또다른 선택지로는 서울 N타워가 보이는 대계단으로 올라가 광장을 가는 선택지까지 있다. 크게 3가지의 길이 제시되고, 작은 길로는 기획관 지하로 가는 길이 있으나 이는 주요한 선택지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전시관(상설관)과 광장의 모습.

 

전시관의 내부에는 우리나라의 역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관들이 산재해 있다. 여기에서 눈여겨 봐야 할 점은 단순히 통사적인 방식을 통해 획일적인 경로만으로 관람객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 전시실은 중앙의 큰 길에 양옆으로 가지처럼 붙어 있으며 두 실 혹은 그 이상이 서로 완만하게 연결되어 있다. 완만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는 한 실의 관람을 마치고 다음 실로 갈 수도 있고 다시 중앙의 큰 길로 나올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다.

 

중앙 길에서 바라본 모습. 우측에 계단이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실의 일반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진입-해당 시대 관람-휴식공간이나 중앙으로 나갈 수 있는 길-다음 실로 이어지는 관람. 관람객은 역사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관람을 하고 싶다면 계속해서 다음 실로 나아가며 전시를 관람하면 되고, 중간에 피로하게 된다면 휴식공간이나 중앙으로 나가 의자에 앉거나 다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출입구는 일방통행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역사의 흐름과 반대로 관람할 수도 있으며 관람객이 보고 싶어하는 시대의 전시실만을 찾아서 관람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관은 총 3층이다. 1층은 선사·고대관, 중·근세관으로 구성되며 2층은 기증관, 서화관으로 구성된다. 마지막으로 3층은 아시아관과 조각·공예관이 있다. 여기서 1층의 모든 관람을 마치면 선사 시대때부터 대한 제국까지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2층과 3층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 한 상태로 관람을 마치고 관람객이 떠날 수 있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의 1층에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수단인 계단, 에스컬레이터가 곳곳이 눈에 잘 띄게 위치하고 있다. 이는 전시관의 실면적 자체가 넓어서 계단이 한쪽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목적이었다면 노출을 할 필요는 없다. 노출되는 계단을 통해 관람객은 위로 올라가는 선택까지도 할 수 있다.

 

(좌측)진입하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계단 // (우측)2층과 3층 사이의 에스컬레이터. 다시 내려갈 수도 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을 관람 목적으로 방문하면 금방 지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실들의 윤곽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어두운 곳에서 관람을 하는 것이 주 관람 방식인데, 이는 체감상 실면적이 작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이로 인해 실제로는 상당한 거리를 움직였지만 심적으로는 그리 크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또 역사의 시작과 끝이 1층에 전부 있기 때문에 1층을 전부 봐야 관람이 끝난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한몫 할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중간중간 선택의 여지를 두는 것은 관람이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신체적으로는 휴식공간이 필요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주고, 정신적으로는 새로운 전시공간이나 전에 봤던 인상적인 전시품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요소도 있다. 부지가 넓은 편이기에 강제적인 동선을 채택했다면 많은 관람객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했을 것이다. 이에 선택을 통한 다양성은 건축물의 주 목적에도 부합하며 각 실과 실에서, 건축물에서, 건축물 바깥까지 나타나고 있다.

 

나갈 것인가?(좌측) 이어서 관람할 것인가?(정면) 휴식할 것인가?(우측)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부지에 들어섰을 때부터 다시 나갈 때까지 무수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이 선택지는 언제 와도 이 건축물이 질리지 않도록 하는 요소가 된다. 이로 인해 성인뿐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을 하는 데 있어서도 보다 쉽게 흥미를 유도할 수 있다. 당 건축물의 특성은 공공성, 전시, 교육에 그 목적과 의의가 있다. 선택을 강요받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에 숲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이로 인해 국립중앙박물관은 넓은 부지에 많은 선택지를 두는 것을 주요한 가치로 여겼고, 이는 곧 이 건축물의 이슈가 되었다. 해당 이슈, 선택과 다양성은 건축물의 목적에도 적절히 기여하며 건축 비전문가라고 할지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잘 표현되었다. 건축물에 적용된 이슈에 대한 분석을 하기에 모범적이고 정직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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